나는 내가 움직이지 않은 채 무언가를 창작해낼 수 있을 거란 환상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나의 이런 이상을 사랑하면서도 누구보다 가장 혐오하고 있다. 현실에 타협하는 나의 모습에 염증이 난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나무들과, 뿌연 거리와, 밝은 날씨를 묘사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부터 내가 어딘가로 도망쳐온 곳이라면 아마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꽉 막히는 숨에 나의 생명이 초록색이 되는 순간. 어쩐지 시큰해진 공기에 눈이 감긴다.
나는 그래도 나의 회의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울과 당혹이 전부였던 나의 여건엔 우울과 당혹, 성장과 혼란, 방황과 체증,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과 나의 대한 사랑의 체험이 추가되었다.
나의 겉모습을 편견없이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나 역시 타인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까지 믿으려고 한다. 드러나는 나의 긴 바지까지만. 더 이상 발목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회의감. 회의. 관계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노력해야한다.
누군가을 믿는다는 것에 늘 망설였던 나는 성인이 되고 많은 거름망에 오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게 두려웠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그리고 꽉 막힌 나의 문을 열어준 이들이 있었다. 감사하다.
나는 어떠한 관계든 내면의 깊이를 상당히 중요시 생각한다. 성별과 나이를 떠나서. 멍청함이 싫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멍청함은 함부로 단정짓는 것이다. 싫어하는 타인의 행동을 거울로 삼지말자. 늘 다짐한다.
무섭다. 앞으로의 시간들이 무섭고, 어떻게든 만나게될 사람들이 무섭다. 시간이 지나 혹여나 내가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의 관계를 소홀히 할까 무섭다. 하지만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활자를 오랫동안 읽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는 타인의 조각을 하나하나 붙여 만든 덩어리이다. 이왕 붙일 조각이라면 조금 더 가치있는 조각이었으면 한다.
이번에 감당한 회의의 시간은 상당히 길고 복잡했다. 어떻게든 한 발 앞서 갔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