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당시 ‘에이즈’라는 병은 불치병이나 다름없었다. 치료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에이즈는 ‘쉽게 옮기는 불결한 성병’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었기에 환자들은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혀 정신적인 고통 역시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한 인식의 모습을 주인공 ‘에릭’의 엄마와 ‘에릭’의 학교 아이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엄마 ‘게일’은 아들이 옆집 에이즈 환자인 ‘덱스터’와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학교 아이들은 ‘덱스터’의 친구인 ‘에릭’을 ‘호모, 게이’라며 괴롭히고, 인신공격했다. 그러나 ‘에릭’과 ‘덱스터’는 여전히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리고 ‘에릭’은 ‘덱스터’의 에이즈 치료제를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온갖 풀 초로 약재를 만들어보았지만, 그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즈 치료제를 발견했다는 기사를 보고 ‘에릭’과 ‘덱스터’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버린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다. 온갖 역경을 겪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덱스터’는 얼마 후 병의 증세가 급격히 악화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에릭’은 ‘덱스터’를 위해 재밌는 말도 하고, 몰래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한다. 바로 “죽은 척하기”이다. ‘에릭’이 ‘덱스터’가 죽은 것 같다고 간호사와 의사에게 거짓말을 하고, ‘덱스터’는 죽은 척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그들을 놀라게 하는 장난이다. 여느 날, 그 장난은 현실이 되었다. ‘덱스터’는 이제 죽은 척을 할 수 없었다. 정말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 전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에릭’과 ‘덱스터’가 함께 만든 요새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은 아마 ‘덱스터’의 죽음에 대한 암시인 듯하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세 가지 있다. 우선, 이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단연 명장면으로 꼽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중에서도 ‘덱스터’의 엄마가 ‘에릭’의 엄마에게 호소하듯이 말하는 장면과 영화의 엔딩인, ‘에릭’이 ‘덱스터’의 신발을 강가에 떠내려 보내는 장면이다. 전자는 ‘덱스터’의 엄마인 ‘린다’가 ‘에릭’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장면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린다’는 ‘에릭’을 ‘린다’의 차에서 끌어 내리는 ‘게일’에게 분노와 슬픔이 섞인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첫째, 당신 아들의 절친이 죽었어요. 에릭은 장례식에 가야 해요. 둘째, 앞으로 에릭을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지 마세요. 그러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죽일 거야.” 그리고 ‘린다’는 ‘에릭’에게 ‘덱스터’의 우울하고 고독한 삶에서, 그것을 벗어나게 해주는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후자는 영화의 엔딩답게 별다른 기술 없이도 강한 인상을 주었다. ‘덱스터’의 장례식에서, ‘에릭’은 자신의 신발을 ‘덱스터’에게 쥐여주고 ‘덱스터’의 신발 한 짝을 가져와 강가에 떠내려 보낸다. ‘신발’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여행 당시,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덱스터’에게 ‘에릭’은 자신의 더러운 신발을 주면서 자신을 생각하라 말한다. ‘신발’은 그들에게 우정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을 꼽자면, ‘에릭’이 자신과 ‘덱스터’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덱스는 그냥 아픈 거야!”라며 “너희 동생이 아프다고 생각해 봐”라고 당당히 외치는 장면이다. ‘에릭’의 대사는 영화를 넘어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외치는 듯했다. 또한, ‘덱스터’에 대한 ‘에릭’의 순수하고 참된 우정을 가장 잘 드러내 주었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잔잔하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등장인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저 에이즈에 걸린 소년 ‘덱스터’와 그의 친구 ‘에릭’의 평범한 일상이 전개되는 영화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변은 ‘편견’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았을 때 주인공 ‘에릭’은 그 단단한 편견의 벽을 부순 인물이었다. 울타리를 넘은 ‘에릭’은 진정한 우정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영화는 직관적으로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없어도, 내용의 전개나 장면 연출을 세심하게 했다는 것이 느껴졌고, 특히 각 등장인물의 성격이 입체적이어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보아도 그 의미를 정확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 활기차고 건강한 ‘에릭’의 역을 맡은 배우가 정말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예측할 수 없다. 죽음은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편견에 휩싸여 세상을 바라보기보단,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세상을 바라봐야 하며, 비관적으로 내 삶을 개탄하기보다는 매 순간을 ‘진짜’라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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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성찰과 표현' 수업에서 작성한 영화 감상문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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